
“마지막 모임이라 생각하면 되지.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매일 술을 마셨다. 첫 날은 도쿄에 특파원으로 나와 있는 기자 친구들과 마셨고, 둘째 날은 오래된 동갑내기 친구와,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친한 선배님들과 함께 낮부터 카운터 바를 빌려 마셨다. 그 카운터 바가 그날로 문을 닫았기 때문에 폐점파티도 겸한 자리였다. 술은 센 축에 속하지만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 스타일이라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오히려 적은 량을 마셨다. 혹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데 무슨 짓이냐고 하겠지만, 우리들이 들른 곳들은 모두 도쿄의 한국가게들이었다. 미증유의 역병 때문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져 문닫기 일보직전이라는데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취지도 좋고, 간만에 마시는 한국산 소주도 사흘 내내 맛났으니 더 바랄 게 없다.
그런데 다음날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 몸의 관절이 아팠고, 근육통도 찾아왔다. 목도 간질간질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혹시나 싶어 체온부터 쟀다. 36.9도, 약간의 미열이다. 호흡곤란이나 두통은 없고, 목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인후염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몰라 러시아워 시간을 피해 전철을 탔다. 그런데 전철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바깥과 온도 차가 심해서인지 몰라도 줄곧 식은 땀이 흘러 내리고, 기침이 나왔다. 처음 간헐적으로 한 두번 나오던 기침은, 역을 지날수록 규칙적으로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내 눈썹 언저리에 송글송글 맺힌 식은 땀이, 어쩌면 더더욱 공포감을 심어 줬을 수도 있다. 일부러 늦은 시간에 탔지만, 그래도 통근전철이다. 물론 이들의 수상쩍은 시선을 30분만 참으면 종착역까지 한번에 갈 수 있지만, 쉬이 잦아들 기침이 아닌 것 같아 다음 정차역에서 내렸다.
나카노 역 플랫폼 끄트머리로 가서 기침을 하는데(물론 마스크는 했다) 사람들의 차디찬 시선이 느껴진다. 몸을 돌리고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 기침했지만 등 쪽으로 수십개의 칼날이 박히는 송구스러운 심정에 빠진다. 그렇게 한 십여분 동안 기침하다 보니 온 몸의 힘이 빠진다. 대합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벤치에 가만 앉아 다시 십여분 휴식을 취하고서야 비로소 나아졌다. 다시 전철을 타고 사무실로 향한다. 이리야 역에 내리자마자 동네 병원부터 찾았다. 작년 9월 금연 직후 극심한 인후염을 앓았을 때 찾았던 조그마한 내과의원이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자 그는 문진을 몇 번 하고 입안 여기저기를 비춰 보더니 가벼운 감기약을 처방해 준다. 내심 코로나 검사를 받고 싶었지만 인플루엔자 검사조차 받지 못했다. 아마 열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날은 넘어갔고, 나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일을 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잘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온 몸이 뜨거웠다. 38.3도다. 무기력증과 근육통은 여전했고, 목 상태는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기침은 약을 복용해서인지 나오지 않았다. 전날의 증상은 어느 정도 해결됐는데, 당장 가장 무섭다는 고열이 찾아오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금세 나를 격리시켰다. 내가 누워 있던 방문은 굳건히 닫혔고, 잠시 후 큰 아이 미우가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착용한 모습으로, 알콜 소독약이 담긴 스프레이 분무기를 들고 들어와 방안 곳곳에 뿌린다.
"언제 이런 것까지 다 사놨냐?"
놀란 말투로 묻자 미우는 검지 손가락을 세워 마스크 위에 갖다 댄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뿌린 후 나는 자연스러운 완전격리의 세상에 빠져 들었다.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계속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문이 조금 열리면서 주먹밥과 된장국이 들어왔다. 아내한테 병원 예약 좀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토요일은 어느 동네병원이든 사람이 빽빽한지라 일단 해열제 먹고 버텨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일본적인 사고방식이다.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특히 많이 모이는 토요일의 동네병원에 가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럽다. 몸도 아픈데 저런 말까지 직설적으로 들어야 하다니. 물론 이 모든 건 선별진료소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아베 정권의 무대책이 일차적 원인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일요일은 어차피 휴진일이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37.5도로 열은 조금 내려갔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말하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에 한발 더 성큼 다가갔다. 37.5도의 고열이 4일이상 지속되면, 다른 증상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검사를 받고 싶었다. 검사를 받으면 양성인지 음성인지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양성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이상한 눈총을 받기 싫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가 쉰다는 이야기를 듣고(우리 현장은 토요일도 정상출근이다) 물론 장난이겠지만 "코로나 아냐?"라고 물어왔다. 처음 한두번은 상관없었고 웃으며 답했는데, 며칠동안 계속 그런 말을 들으니까 이게 말로만 듣던 '코로나 차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몸도 아픈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까, 그리고 아이들도 내 방 근처에는 얼씬도 안하니까 정말 이게 사는 건가라는 자괴감도 밀려왔다.
그리고, 운명의 월요일 아침 눈을 번쩍 뜨는데 몸이 한결 가벼웠다. 체온부터 재어보니 36.6도! 뭐야, 코로나 아니었잖아. 기쁜 마음에 방문을 활짝 열고 1층 거실로 내려가는데, 내 발소리를 듣던 아이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둘째 유나가 "잠깐! 아빠! 스톱!"을 외친다. 황급히 마스크를 쓰고 한 손에 알콜소독액 스프레이를 들더니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몸에 뿌린다.
(정리하다가 살펴보니 이 칼럼 썼을 때 컴터가 고장나서, 즉 원고 쓸 프로그램이 없어 블로그에다가 스맛폰으로 초안을 썼었군요. 아무튼 그렇게 완성된 칼럼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3241395098682
아베의 무대책이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
[박철현의 신일본 신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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