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회사는 도쿄 다이토구의 이리야(入谷)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밤늦게까지 잔업하고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자정 너머 퇴근할 땐 이리야에서 미노와로 가는 국도 4호선을 지난다. 그 때마다 밤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도로 바로 옆 인도에서 야간식별용 형광조끼를 입고 LED형광봉을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흔드는, 70대 노년 여인을 본다.
4년전 그를 처음봤을 땐 공사안전요원인 줄 알았다. 실제로 그 옆에는 야간 수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사와 그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공사가 없는 날도 그는 같은 복장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나와 형광봉을 마치 춤추듯 흔들어 댔다.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 혹은 그냥 심야에 잠이 안 와 운동을 하는 건가 했다. 복장이 운동복이 아닌게 좀 어색하긴 했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시간대를 생각한다면, 꽤 고마운 행위이다. 혹시라도 모를 위험에 대비해 상대를 움찔거리게 하는 효과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는 정말 규칙적인 듯 했다. 내가 그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돌아갈 땐 반드시 보였다.
가령 내가 월요일에만 심야까지 잔업하고 나머지는 정시에 퇴근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월요일에 그를 본다. 목요일에 잔업을 했을 때도 보였다. 화요일, 수요일도 마찬가지다. 즉 나는 요일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잔업을 하고 또 귀가를 하는데 그때마다 항상 보였으니 필경 그는 매일 저 시간에 저 복장을 하고 나와 두 시간씩 규칙적으로 봉을 흔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내가 이리야로 출근을 시작한 게 4년전이라 '4년동안'이라고 말했을 뿐 그 전에도 저랬을 확률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도대체 그녀는 몇 년동안이나 왜 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궁금증도 옅어져 갔다. 그 시간에 길을 지나치다 보이면 으례 있는 존재로, 즉 도로 한켠의 가로수가 항상 그 자리에 있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귀갓길에 갈증을 느꼈고 차를 잠깐 도로변에 세운 후 자판기 쪽으로 향했다. 캔커피 버튼을 눌렀다. 언제나처럼 죠지아 에메랄드 마운틴을 선택했다. 커피가 나오고 탭을 딴다. 정차된 스바루 임프레서G4에 몸을 기대고 커피를 몇 모금 마셨을 때 이리야 2번지 골목길에서 형광색 불빛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스맛폰을 봤다. 11시 59분. 내 예상이 맞았다. 아마 저 형광색은 그 여인일 것이다.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다. 그 자리였다. 우연히 갈증이 생겨 자판기 불빛을 보고 정차시켰을 뿐인데 공교롭게도 그 노년의 여인이 항상 춤(혹은 운동?)을 하던 그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스바루 자동차나 거기에 기대 커피를 마시는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도로변 끄트머리에 서서 형광봉을 흔들기 시작했다. 국도 4호선 이리야에서 미노와 쪽 방향으로 가는 자동차들에게 안전운전 하라고 경고라도 하듯 맹렬하게 형광봉을 흔들어댔다.
나와의 거리는 3미터 남짓이다. 왜 그러시는지 적당한 목소리로 물어보면 내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의 형광봉 작업이 너무 열성적이라 감히 끼어들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관뒀다. 그렇게 십여분이 지났다. 커피를 다 마셨고, 담배도 한 개피 피웠다. 갈증도 해소됐고 잠도 달아났다. 이제 다시 스바루에 올라타 집으로 귀가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 먹고 차 앞문을 여는 순간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지쳤는지 잠깐 쉬는 것 같다. 숨을 휴- 휴- 몰아쉬며 형광봉을 내리고 우두커니 서 있다. 숨 차 보이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자판기로 가 따뜻한 교토 이에몬 녹차를 하나 사서, 그녀에게 다가가 건넸다.
그는 순간 움찔거리면서도 녹차를 건넨 내 모습을 보더니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더 놀랬다. 사실 내심 그가 조현병 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멀쩡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발음은 정확했고, 오히려 외모보다 더 젊어보이는 깔끔한 중년의 목소리 톤이었다. 내친 김에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제가 이 근처 회사에 다니는데 이 시간에 항상 나오시는 것 같더라구요. 몇 번 봤어요.”
그러자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약간의 시간을 두고 녹차를 몇 모금 한 후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들이 죽었어요. 여기서. 10년전에 교통사고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모든 의문이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라는 짧은 외마디 탄식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예요. 아들이 잘못한 거죠. 무단횡단을 했으니까요. 깜깜한 밤에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오다가 그만 요 바로 앞에서 사고를 당했어요. 열두시에 사고가 났고 두시에 사망했어요. 에이쥬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목숨은 붙어있었는데 버티질 못했죠.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연락을 새벽에 받았어요. 나와보니 여기 이 앞에 아직 지우지 못한 아들의 피가 흥건했고 자동차 파편이 널부러져 있었죠. 아, 녹차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다시...”
그녀는 손목시계를 한번 힐끔 보더니 마시다 남은 녹차를 형광조끼 안쪽에 집어 넣은 후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형광봉을 흔들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녀의 시선은 대부분 도로 건너편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가보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도로 건너편에 서 있는게 보인다. 뭘 어떻게 봐도 무단횡단을 하려는 분위기다. 그 때 였다. 갑자기 그녀는 호루라기를 세차게 불었다. 건너편의 취객이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이쪽을 쳐다본다. 취객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 형광봉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취객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취객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후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평소때와 다름없은 그의 규칙적인 현란한 움직임이 사이드미러 속으로 비춰진다.
지금까지 우습게만 보였던 그 움직임은,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봉사였고, 그녀는 '거리의 성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