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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여성들에 대한 찬사, 로마(ROMA)

by uenotetsuya 2020. 4. 21.

 

기억의 저편을 되돌아보면 이 작품은 반드시 누군가의 추억이 된다. 내 어머니도 보모였고, 시간이 지나서는 마산 어딘가의 반찬가게나 고깃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리고 그 고용주의 누군가는 영화 속의 소피아 부인이었다. 그로부터 몇 십년이 흘렀고 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그녀와 친교를 이어가고 있다. 아니, 그 두분은 둘도 없는 친구사이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다룬 알폰소 쿠아론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은 정적이며 절제되어 있다. 70-71년 멕시코의 사회적 상황은 마치 어머니가 87년 노동자대투쟁 때 회원동 국제주유소 근처에서 황급히 자판을 파하며 근처 철길에서 놀고 있는 나에게 “빨리 들어가자, 위험해”라고 말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연기가 아니라서 좋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실제로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이 감독의 의도조차 삼켜버리는 리얼리티로 재탄생한다. 그 리얼리즘이 정점에 달해 클라이맥스따윈 없어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엄청난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통적인 고용주와 하인이라는 관념자체를 뛰어넘는 인간애가 발휘되는 이 시퀀스는 아마, 근대영화역사장 가장 뛰어난 롱테이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러 친구들이 언급했던 대로, 그렇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어야 했다. 그린 북도 물론 훌륭했지만, 로마에 비하면 솔직히 영화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볼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보고난 후 압도적인 울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온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10점 만점 중 9.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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